기업 투자 확대·설비 확충으로 반도체 인력 수요 증가
특별법은 ‘인력양성 대책’ 못 담았다
[시사저널e=이호길 기자] 반도체업계 구인난 속에 인력양성마저 수도권 대학 정원 총량제에 발이 묶였다. 반도체업계가 수도권 대학 정원을 늘려달라고 지속적으로 요구했지만 최근 통과된 반도체특별법에도 빠졌다. 국가 핵심사업인 반도체 산업 발전을 위해 대학과 정부가 유연성을 갖고 인력 수급에 적극적으로 나서야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13일 반도체업계에 따르면 산업 현장에서 필요한 전문 인력 부족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반도체 기업들이 생산설비 확충에 나서고, 시설의 첨단장비를 운영할 수 있는 전문 인력을 찾는 곳이 증가하면서 인력난이 가중되고 있단 분석이다.
◇반도체 인력난 심화···“특별법에 전향적 대책 빠졌다”
반도체 후공정업체 관계자는 “사실 구인난이 1~2년 된 이야기는 아니다. 숙련된 인력, 특히 학위를 가진 엔지니어가 부족한 문제는 항상 있었다”며 “지난해 반도체 산업이 호황을 맞으면서 대기업 투자 규모가 늘었고, 인력 수요도 증가했는데 전문성을 가진 인재를 찾기 어렵다. 업계 전반으로 보수나 처우 개선에 신경을 쓰는 분위기지만, 사람은 늘 부족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구용서 단국대 전자전기공학부 교수는 “시스템반도체 쪽이 확장되면서 설계, 공정, 모듈, 장비 등 모든 분야의 규모가 커지는데, 교육받은 인원은 한정돼 있어 기업체 일손은 점점 더 부족해지고 있다”며 “삼성전자 등 글로벌 대기업들도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사업 확장 필요성은 높아지지만, 고급 인력 충원은 쉽지 않다. 기업은 굉장히 절실한 문제”라고 말했다.
대학 정원을 늘려 반도체 인력을 양성하는 방안이 거론되지만 지난 11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국가첨단전략산업 경쟁력 강화 및 보호에 관한 특별조치법안’, 이른바 반도체특별법에는 이같은 내용이 빠져 실효성이 떨어진단 지적이다. 이 법은 반도체를 포함한 국가첨단전략산업에 대한 육성 및 보호 방안을 담고 있다.
반도체특별법에는 전문 인력 확보를 위한 계약학과 및 특성화대학 설치 지원책이 포함됐지만, 업계가 요구한 수도권 대학 반도체학과 정원 증설은 담기지 않았다. 수도권정비계획법상 수도권 대학은 인구 집중 유발시설로 분류돼 모집 정원을 늘릴 수 없다.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4년제 대학 입학 인원 중 수도권 대학이 차지하는 비중은 40.4%로 2010년(34.8%)보다 5%포인트 이상 증가했다. 또 지난해 전국 대학 미충원 인원 4만486명 가운데 75%(3만458명)가 비수도권 대학에서 나왔다. 수도권 대학의 정원을 늘려야 인력 수급이 원활해진다는 것이다.
김형준 차세대지능형반도체사업단장(서울대 재료공학부 명예교수)은 “수도권 대학 총량제를 풀어달란 요구를 많이 했는데, 힘들다는 답변을 받았다”며 “특별법에는 인력양성센터를 만든다고 나와 있지만, 실질적인 연구개발을 위해 석·박사 고급 인력이 필요하다. 세부적인 하위 법령을 만들어서 인력양성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지방 균형발전 차원에서 수도권 대학 정원을 규제하는 건 이해하지만 미래 먹거리인 반도체 경쟁력 강화 측면에서 전향적인 대책이 필요해 특별법에 포함되지 않아 아쉽다”고 지적했다.
◇치열해지는 인력 확보 경쟁···“대학 융통성·부처 조율 필요”
반도체업계는 획기적인 방안이 마련되지 않을 경우 인력 확보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미국 경제매체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최근 세계 주요국이 반도체 인프라 투자에 나서면서 오는 2025년까지 미국에서만 7만~9만명의 전문 인력이 추가로 필요하다. 이 때문에 미국과 중국, 대만 등은 산학 협력과 정부 지원 확대 등을 통해 반도체 인력을 키우고 있다.
구 교수는 “반도체 공정·소재·모듈 이런 분야는 석·박사뿐만 아니라 학부 졸업생 등 범용 인력도 많이 필요하다. 그러나 총량제로 묶이다 보니 인력 수급이 원활하지 않다”며 “정부에서 정무적 판단을 내릴 필요가 있다. 기업은 우수한 인재를 확보하려는 욕구가 강하기 때문에 학부생 제한을 푸는 게 석·박사 이상 인력도 늘릴 수 있는 핵심적 요소”라고 진단했다.
수도권 대학 정원 총량제 완화가 어렵다면 대학이 유연성을 발휘하고 교육부와 산업통상자원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부처 간 조율을 통해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분석이다.
김 단장은 “사실 정원 문제는 대학 내에서 조정할 수도 있는데 대학들이 워낙 안 움직인다. 정원을 대학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교수들이 본인 소속 학과 폐지 같은 문제 때문에 소극적이다”라며 “학령인구가 감소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조금 더 융통성을 발휘하면 해결 가능한 방법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부연했다.
이어 “인력 양성은 교육부, 산업부, 과기부 등에서 엇박자를 내는 측면이 있다. 여러 부처에서 개입하면 효과적이지 않다”고 지적하면서 “전략산업 분야의 인력 양성은 교육부가 손을 떼고 타 부처에 맡겨주는 등 부처 간 조정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출처 : 시사저널e - 온라인 저널리즘의 미래(http://www.sisajournal-e.com)